당산나무께서 보우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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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탐사기록 / 괴담

[당산나무께서 보우하시니]

: <어둠탐사기록>에 수록된 괴담,  
초자연재난관리국의 등록번호는 2426PSYA.2022.차76.

전남 모처의 외진 산속 마을, 당산나무에 얽힌 괴담. 본래 이 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졌으나, 벽천 요원이 당산나무의 나뭇가지를 받아간 이후부터 이상 현상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마을에 유입된 외부인이 귀로를 잃거나, 장기 체류 후 기억과 의지를 상실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특히 군복을 착용한 자 및 흉기를 소지한 자의 사망률은 100%에 달하며, 시신이 끔찍하게 훼손된 상태로 나무 인근에서 발견되곤 한다.

 

정작 마을에 들어간 자는 따뜻한 환대를 받는다는 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외부에 대한 기억이 흐려진다는 점 등으로 인해, 생존자 증언 자체가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무기 소지가 금지되어 있어, 관리국에서도 비무장 최소 2인 1조로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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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서의 아버지, 임준혁의 고향은 전남 깊숙한 산골 마을이다. 도로는 좁고, 신호도 잘 잡히지 않아 일부러 찾지 않으면 발길이 닿지 않는다. 1980년대 초, 계엄령이 전국을 뒤덮고 광주엔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시절. 그 혼란 속에서, 이 마을은 겉으로는 조용한 시골인 척하며, 몰래 피 흘린 사람들을 숨겨주었다. 찢긴 옷에 피를 흘리고, 절뚝이며 걸음을 옮기던 이들은 문을 열어주는 손을 따라 말없이 방 안으로 사라졌다.

 

그날도 마을 어귀엔 피 묻은 옷자락이 스쳐 지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을 잃었다는 군인 두셋이 마을에 발을 들였다.

 

처음엔 평범한 시골 마을로 보였겠지만, 군인들은 어딘가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중 한 명이 수색을 제안했고, 마을 사람들의 긴장감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던 군인이 마당 한쪽 흙더미를 보고는 총을 들어올렸다.

 

그때 마을 이장이었던 현서의 할아버지가 당산나무 앞에 나섰다.

 

“그만하쇼. 이 마을은 그런 데가 아닙니다.”

 

말은 끝나지 못했다. 군인의 총구는 망설임 없이 그의 가슴을 겨눴고, 총성이 울렸다.

할아버지는 나무 앞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그 피는 나무 뿌리로 스며들었다. 군인들은 시신을 수습하지 않았다. 순간, 마을은 숨을 삼킨 듯 조용해졌고, 남겨진 군인 하나가 총을 휘두르듯 휘적이며 소리쳤다.

 

“기어 나올 생각 말고 얌전히 처박혀 있어. 괜히 나대다 같이 죽고 싶지 않으면 말야.”

 

그들은 마치 쓰레기를 본 듯 시신을 흘겨보다 마을 밖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하늘에서 빗방울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에이씨, 재수 없게.”

 

군인 하나가 피식 웃으며 침을 뱉듯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상부에 보고하겠다며 마을을 빠져나갔다.

 

밤새 비가 퍼붓고 천둥이 두어 번 울렸다.

 

아침이 되자, 마을을 잇는 산길은 통째로 무너져 있었다. 흩어진 군 장비만이 진흙 속에 처박혀 있었고, 군인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날 이후 마을엔 조용한 말이 돌기 시작했다.

 

 

당산나무는 마을을 해치는 자를 그냥 보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무를 조심히 모셨고, 특히 현서의 할머니는 매일 곱게 차려입고 나무 앞에 절을 올렸다. 아이들은 나무 근처에 가는 것을 금했고, 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삶 안에 조용히 섞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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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예외도 있었다.

 

“저건 네 할아버지 나무란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어린 현서를 당산나무 앞에 데려다주었다. 현서는 그곳에서 책을 읽고, 나뭇가지를 만지며 시간을 보냈다.
때때로 어깨에 가만히 얹히는 기척이 있어도 무섭지 않았다. 그건 바람이 아닌 손길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요양원으로 들어간 후에도, 현서네 가족은 마을을 잊지 않았고, 틈틈이 들러 집과 나무를 돌보았다.

 

그러던 어느 여름, 현서가 고등학교 1학년, 현수가 중학교 2학년이던 때. 가족은 여행 중 괴담에 휘말렸고, 부모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임 남매는 보육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방학이면 현서는 현수와 재관을 데리고 마을로 돌아왔다.

 

잠든 동생들 곁을 조용히 빠져나와, 밤마다 나무 앞에 섰다. 울음 대신 눈물만 흐르던 밤, 현서는 나무 앞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 더는 아무도 잃고 싶지 않아요.”

 

그때였다. 나뭇가지가 어깨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감촉. 분명한 손길이었다.

 

 

아가, 걱정 말거라.

 

 

그 음성은 들리지 않았지만, 마음 안쪽에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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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나 세 사람은 재난관리국 요원이 되었지만, 당산나무를 찾는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나무는 현서와 현수, 재관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줄 수 있는 보호의 범위 안에 그들을 품었다.

 

그러던 중, 임현수가 또 다른 괴담 사건에 휘말려 실종된다. 사망 처리되었지만, 시신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로는 현서와 재관만이 마을을 찾았다.

 

그날도 재관이 잠든 밤, 현서는 홀로 나무 앞에 섰다. 울음을 참지 못하고 흐느끼며 손날이 다 터지도록 땅을 두드렸다. 피가 맺힌 손에서 흘러나온 붉은 방울이 흙에 스며들었다. 그 순간, 또다시 나뭇가지가 그의 어깨를 감쌌다. 이번에는 안아주는 것도 같았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는 흐느끼는 숨결처럼 들렸고, 바람은 품에 안기듯 그를 감쌌다. 마치 어린 시절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무언가가 등을 토닥여주는 듯했다. 

 

아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나무에 뿌리내린 몸으론 너를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가지에 나를 실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너와 함께하마.

 

그 애를 데려오진 못하지만, 네 바람 두 가지는 들어주겠다.
하나는, 너를 괴롭게 한 것들에게 그만한 고통을 되돌려 주는 것.
또 하나는, 네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

현서가 고개를 들었을 때, 굵고 묵직한 가지 하나가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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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지는 도깨비 공방에 맡겨져 활로 다시 태어났다.
그 활에는 두 가지 힘이 깃들어 있었다.

 

1. 응보(應報)  –활 하나에는 한 번뿐인 주술적 힘이 깃들어 있다. 이 화살을 맞은 자가 이후 현서나 그의 일행에게 해를 끼치려 할 경우, 그 살의와 고통은 배로 되돌아간다. 단, 이 힘은 활 하나에 단 한 차례만 반응하며, 새로운 활을 쏘아 맞히면 다시 주술이 깃든 화살로서 한 번 더 발동된다. 공격 의사가 없는 이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
2. 수호(守護)  – 지키고 싶은 이에게 활을 쏘면, 고통 없이 표식이 생기고 화살 끝에 불이 타오른다.
   불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대상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보호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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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여기까지였다면, 의로운 설화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뭇가지가 건네지고, 현서가 그것을 도깨비 공방에 맡겨 활로 만들었던 그날 이후, 이야기는 괴담으로 변질되었다. 힘을 나눠준 당산나무 본체는 쇠약해졌고 동시에 오랫동안 틀어박혀 있던 악령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산에 들끓던 원혼들은 나무에서 멀어져 있던 시간 동안 제 몸을 키워왔고, 수호의 기운이 약해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산 너머부터 스멀스멀 기어들어온 그 기운들은 이제 마을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변화된 마을을 눈치채지 못했다. 오히려 점점 더 따뜻해졌다. 낯선 이가 길을 잃고 들어오면, 마을 사람들은 마중을 나와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과 깨끗한 이부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들이 주는 음식을 먹다 보면, 여기가 진짜 고향이었던 것 같고, 바깥이 더 위험한 곳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면, 돌아갈 생각은 점점 흐려지고 만다.

 

바깥으로 나가려 하면 이야기는 달랐다. 길은 똑같았고 표지석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발걸음은 제자리를 맴돌고, 나무에 붙어있던 이끼가 갑자기 반대편에 생기고, 산길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으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손톱 같은 가지가 나와, 옷을 잡아당기고, 속삭이고, 짓이겼다. 몸을 잃지 않아도, 마음을 먼저 잃었다.

 

특히 군복을 입은 자, 혹은 악의를 지닌 자는 예외 없었다. 그들은 반드시 나무 앞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누가 인도하는지도 모르고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거기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지는 움직였다. 살을 찢고, 뼈를 꿰뚫고, 피를 들이켰다. 다음 날이면, 나무껍질 틈엔 사람의 손가락처럼 휘어진 섬뜩한 무늬가 새겨졌고, 비가 오지 않아도 그 틈에서 핏방울이 흘러나왔다.

 

마을은 따뜻하고 다정했다. 하지만 절대로 떠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현서는 활을 받은 이후 한동안 마을에 가지 않았다. 그에게 활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그 속에는 할아버지의 혼이 깃들어 있었고, 이제는 어디서든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관리국에 이상한 신고가 들어온다.

 

‘지도를 따라 들어갔지만 나올 수 없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다’

‘누군가가 계속 밥을 챙겨준다’

‘처음 보는 가족이 나를 부른다’

 

 

…

 

 

신고 내용을 확인한 순간, 현서는 모든 것을 직감했다.
자신이 가지를 받은 그날부터, 괴담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