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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은 지인 분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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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관아, 나 아파. 머리가 너무 아파. 네가 안아줬으면 좋겠어. 기대고 싶어. 물 좀 먹여 줘. 고마워. 너 정말 착하구나. 우리 착한 재관이.

 

열에 달뜬 눈가가 초승달 모양으로 접히며, 근대소설의 한 장면이라면 분명 ‘배시시’라는 의태어를 빌렸을 법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도 수줍은 소녀 같기에, 류재관은 이것이 꿈인 줄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임현서는 류재관의 앞에서 이렇게 미소 짓지 않는다. ‘배시시’보다는 ‘활짝’이나 ‘까르르’하고 웃는단 말이다. 또한 임현서는 저보다 어린 동생에게 기대지 않는다. 아픈 티를 내지 않고, 안아달라 청하지 않는다. 너 정말 착하구나, 말할 때는 칭찬보다 핀잔에 가까울 때가 많다. ‘너 그렇게 착해서 어떻게 살래? 너무 착하게만 굴지 마. 거절 못 하겠으면 이 누나한테 말해!’ 그리 말하며 당차게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그러니 임현서는 거절을 잘한다.

 

“……누나, 눈 감아 줘.”

 

“으응.” 짧게 대답하며 눈을 감는 이 소녀는 임현서가 아니다. 임현서의 얼굴을 하고, 임현서의 교복을 입고, 류재관의 품에 안겨 있으나, 아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사람인 것 또한 아니야. 단지 이것은 꿈. 잊을만하면 안식을 찢고 등장해 평정심이란 것을 모르는 사춘기 소년 마음과 몸에 불을 지르고 가는 장난꾸러기 소녀 꿈. 묘하게 못된 구석이 있는 것을 보면 아주 임현서가 아니라고도 말 못 하게 되어버린다. 아주 임현서가 아니었다면, 과연 못된 행동을 이어갔을까 싶어지기도 하면서.

 

쪽. 키스보다 입맞춤에 가까운 소리였다. 혀를 섞어야 한다는 건 알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아 입술을 핥는 것에 그치고 만다. 그러면 임현서는, 누나는 ‘까르르’ 웃으면서, “귀여워!”라고. 꿈에서까지 지긋지긋한 애 취급을 당하는 것이 분한지 혹은 부끄러운지 입을 꾹 다물어버리는 재관에게 현서는 재차 그 품에 뺨을 문대며 키득거린다.

 

“가르쳐줄까? 해본 적 있어.”

 

“거짓말하지 마.”

 

“거짓말 아닌데?”

 

“난 누나가 키스해봤는지 몰라.”

 

누나라면 해봤겠지─은연중에 생각해왔기에 이리 구는 것이리라. 하지만 재관을 올려다보는 비취색 눈동자는 임현서 특유의 고요한 장난기가 물씬 어려 있었다. 현서는 재관의 목에 팔을 둘렀다. 무심코 움찔 튀어버리는 어깨는 너그럽게 모른척하며, 귀에 대고 사근사근 속삭이기를.

 

“만약에, 내가 너보다 키스를 잘하면.”

 

“…….”

 

“이건 꿈이 아닌 거네?”

 

그게 무슨 상관이야? 꿈이란 가끔 경험을 초월하는 세계를 선사하는데, 지금처럼. 딴죽을 걸고 싶다가도 가까이 다가오는 얼굴에 결국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 정도는 안다. 키스할 때 눈을 감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여전히 부드럽고, 누구 것인지 모를 타액으로 물기가 묻어 있는 입술이 제 것에 닿아 빈틈없이 공간을 메우기 시작한다. 현서는 어깨를 붙든 큼지막한 손을 떼어내 하나는 뺨으로, 남은 하나는 허리로 옮겼다. “가슴 만져도 돼.” 입술을 꾹 누른 채 작게 속삭였을 뿐인데 전해지는 진동이 두개골을 울려 귓속에 벌이라도 든 듯 위잉위잉 어지러웠다. ‘누나, 어지러워. 이제 내가 아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말을 용케도 알아들었다. ‘그럼 이번엔 내가 안아줘야겠네.’ 대답 또한 머릿속에서 울렸다. 울렁울렁. 위잉위잉. 배경은 어느 시원한 방 안인데 꼭 땡볕 아래 부둥켜안고 있는 듯했다. 어지럽고, 땀이 너무 많이 나고, 숨이 차. 입으로도 숨을 쉬고자 헉헉거렸다. 현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제 것과 달리 꺼슬꺼슬한 면 하나 없이 말캉하기만 한 살덩이가 입천장을 훑고 지나갔다. 혀를 섞는다는 건 이런 뜻일까. 재관은 여느 때와 같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속도로 현서의 뒤를 쫓았다. 따라붙어서는 끈질기게 휘감거나 빨거나 약하게 잘근거리기도 했다.

 

“우음, 흐…….”

 

허리를 감싼 손에 바르르 떠는 감각이 생생했다. 하복 블라우스가 얇아서 그래. 내의는 입었겠지? 재관은 치마 허릿단에 손가락을 비집고 끼워 넣었다. 바스락거리는 질감의 블라우스 아래에 부드러운 면 재질의 천이 걸렸다. 그러면, 그 아래로는? 골반께에 걸친 손은 그대로 두고 손가락만으로 상의를 한 겹, 두 겹 올려본다. 닿는 것은 면보다도 부드럽고 입안에 든 것보다는 단단한 살결. 재관은 그것을 세게 움켜쥐었다. 화들짝 놀라 도망치는 것보다야 이게 덜 부끄러울 것 같았다.

 

“누나, 안 더워?”

 

“덥다고 하면 떨어질 거야?”

 

“꿈이 왜 질문을 해.” 나 좋자고 꾸는 꿈이잖아.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주제에 마음을 전하지도 않는, 그런 비겁한 놈 속 편하라고 꾸는 꿈이잖아, 이거. “아니었어?”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걸로 할까?” 봐주는 것처럼 말하기는. 진짜 누나도 아닌 주제에. 내가 만들어낸 가짜 주제에. “혹시 모르지. 예지몽일지도.” 예지몽 같은 게 세상에 어딨어? “세상에 말도 안 되는 게 얼마나 많은데? 너도, 나도 알잖아.” 이제 그만. 더는 누나 비슷한 것으로도 보이지 않게 됐으니까.

 

“왜? 어떤 점 때문에?”

 

가짜가 순진한 체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누난 내가 ‘그거’ 얘기하는 거 싫어해.”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가짜는 기분 상한 티 하나 없이 도리어 속 시원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맞다 했다. 누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알면서 꿈 주인 비위를 맞춰주지도 않는 건가? 무슨 꿈이 이래? 제멋대로인 면은 정말이지 임현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만둘 거야?”

 

“그만둘 거야.”

 

“내가 가짜니까?”

 

“가짜니까. ……누나한테 미안하니까.”

 

“어이구, 미련 곰탱아. 꿈이라도 좀 마음대로 해 봐! 너 그렇게 착해서 어떻게 살래?”

 

……방금 어땠어? 가짜가 기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내려다보았다. 더욱 진짜 임현서에 가까워진 것이다. 임현서는 언제나 나보다 작았으나 동시에 나는 그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눈으로 좇고, 손을 뻗거나. “네가 가짜를 거부하는 건 결국 진짜와 하고 싶단 거야.” 사근사근 속삭이기를. “꿈에서도 말 못 하는 바보.” 하지만, 그랬다가 사실과 꿈을 헷갈려버리면 어떡해. 실수로 진짜 누나한테 말해버리면 어떡하냔 말이야. 앞으로 이 꿈은 점점 사실과 닮아갈 텐데. 함께 사는 만큼, 잘 아는 만큼. 정녕 구분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날에 나는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입 맞춰오는 감촉을 기억해 떠올릴 수 있을까.